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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소식지][발제문 공유] 국가보안법 세미나 발제문 <전쟁정치> 2부

12/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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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담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실천적 세미나>의 발제문 중 하나인 <전쟁정치>를 공유합니다. 본 발제문은 세미나에 참여한 황다본 회원이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의 2013년작 <<전쟁정치: 한국정치의 메커니즘과 국가폭력>>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전쟁정치 2부
 발제자: 황다본

2부 전쟁정치의 메커니즘
4장 안보국가의 전쟁정치
 
- 안보, 치안을 빌미로 한 국가폭력
헤겔은 “국가의 목적은 공동의 이익 그 자체이며, 그 실체인 공동의 이익 속에서 특수한 이익을 보존하는 데 있다. 국가의 업무와 권력은 사유물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가와 법의 기본 목적인 공동의 이익, 즉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수단, 즉 강제력의 행사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강제력 발동이나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국가안보와 치안유지를 명분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는데, 오히려 전쟁위험이나 안보위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를 위해 소수의 요구나 주장은 양보될 수 있도록 해석될 여지가 있다.
전쟁위기 혹은 비상사태의 선포는 권력자의 주관적 판단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내부의 정적에 의한 위협 때 국가 비상사태의 명분이 된다. 박정희의 10월 유신 단행 직전 비상사태 선언이 그렇다. 이 경우인 안보 위협이 아닌 통일 명분으로 대통령 영구 집권과 국민 총동원, 인권탄압을 실시한 셈이다. 또한 간첩을 잡겠다고 중정이 간첩의 수괴인 북한의 권력자들과 밀실 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근대 이후 권력자들이 자신과 집권세력, 정당의 위기를 국가위기라 말하고, 이견을 묵살하고 탄압한 예가 많았다. 이들에겐 내부의 ‘반역자’들이 더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앞선 조지 오웰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제국주의의 식민권력이나 독재권력은 치안과 안보를 최고 목표로 두었다. 시민들은 잔혹한 치안조직들에게 복종해야 했다. 범죄는 치안을 내세운 우파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내세우는 표적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형벌국가’와 공존하는 것이다. 치안을 내세우며 범죄자에게 강경한 정책을 편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를 통해 보수세력의 결속을 도모하고 체제 안정을 꾀하려 한 사례를 여럿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권력자의 의도에 의해 과장되거나 조작될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권력이나 재산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국가 폭력기구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국가 유지를 위해 폭력기구는 광범위한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기득권은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실제로 전쟁과 안보위기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통제·감시되고 살해되었다. 오히려 외국 군대에 의해서 죽은 사람보다 자국 군대와 경찰 등 폭력기구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다.
오히려 권력이 정한 위기에서 전쟁 상태가 되는 것은 국가나 군주, 대통령이 자국의 백성, 국민을 우선 보호해준다는 것도 보편타당한 공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국가가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국민 입장에서 식민지 국가와 국민 주권이 충분히 보장도지 못한 국민국가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국가폭력 행사의 측면에서 볼 때 해방 직후 오늘까지 남북 두 국가가 일제 식민지 국가보다 훨씬 더 문명국가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후 1년 동안 체포, 구속된 사람은 일제 시대의 정치범 수를 넘어섰다. 이러한 국가폭력은 식민지, 국가 건설 초기의 진통, 군사정권을 넘어서 더 넓은 의미의 폭력으로 미군기지 옆 매향리와 대추리에도 미치며, 노동자들이나 영세 자영업자들 또한 포함된다.
이러한 넓은 의미의 폭력의 주체는 군, 경찰뿐아니라 관료기구, 사법부나 언론도 폭력의 가해 주체가 될 수 있다. 다른 쪽의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틀린 사실을 전달한다면 그러한 교육기관과 언론도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다. 민주화 이전까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던 국가는 민주화 이후에는 문화적 폭력, 상징폭력의 주체로 변신했다. 그것의 실질적 고통은 결코 약하지 않다.
 
- 전쟁정치의 구조와 동학
전쟁이 아니어도 내부 반체제세력의 도전을 이유로 국내 정치가 전쟁 수행의 모델이나 원리에 입각해서 진행될 때, 정치·사회 갈등이 폭력화되거나 지배질서 유지를 위해 ‘적과 우리’의 원칙과 담론이 사용되어 적으로 지목된 집단의 존재와 활동의 기반을 완전히 없애려 할 때, 국가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 정당 간의 갈등이 비정규 전쟁과 같은 양상으로 벌어지게 된다. 이렇듯 내부의 노동·빈민세력, 비판적 지식인까지도 절대적 적처럼 취급되고 제압하여 무력화하려는 일이 국가의 일차적 활동 목표가 되는 상황을 ‘전쟁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전쟁정치에서는 행정권이 의회와 사법권을 압도하고 정당정치의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수사정보기관이나 공안검찰이 정당을 대신해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한다. 또한 전쟁정치는 국가가 대내외적 적과 마주하고 있다는 상황 인식 위에서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으로 선포되고, 국가기관이 내부의 적을 자주 공격한다. 특히 민간인 저항세력도 무장한 적과 같이 취급되고, 군법회의와 같은 사법절차, 통제 방식이 민간인에게도 적용되는데, 법적 보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유지된다 해도 전쟁정치에서는 단순한 정치적 반대세력이나 저항세력의 인권도 검찰, 경찰 등 공권력의 집행 과정에서 쉽게 무시되곤 한다. 심지어 이들을 ‘악마화’하고, 이들 내부의 적 혹은 테러세력의 위험을 이유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고발자 역할을 하도록 모든 국민을 압박한다.
사실 상 실질적인 최상의 법은 권력자의 명령 혹은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각종 명령, 비상조치 등이 된다. 증거는 없으나 약간의 의심이라도 가거나 아무 죄가 없는 평범한 민간인을 사형할 수 있는 법 조항은 사실상의 폭력을 법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법의 지배’가 아닌 ‘법을 통한 지배’이며, 폭력이 법의 목적을 위한 보편적 수단이 된다. 말단 군인이나 경찰도 전제군주와 같은 권력을 갖거나 ‘실질 헌법’의 집행자가 된다. 비록 민주화를 거쳤더라도 법의 폭력적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을 뿐더러, 위기가 증폭되면 폭력이 전면화될 수도 있다. 2016년 촛불혁명 당시 검토된 기무사의 계엄 문건이 그러한 사례이다. 주권의 불안정이나 지배집단 스스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회를 무력화하고 전쟁정치를 시작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계엄령이 실행되었다면 시위대나 저항세력을 겁주기 위해 전시적 폭력, 학살, 사설 폭력집단의 폭력행사에 대한 묵인 등의 상황이 자명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촛불을 들던 정부비판세력이나 사회구성원들은 폭력의 희생자로 방관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냉전 시기는 실제 전투는 없지만 만성적인 전쟁위기 상태로써 은밀한 국가테러, 공권력의 위법한 집행, 시위에 대한 과잉 대응, 사법부의 노골적 위법성과 편향성, 검찰의 선택적 기소 등의 방식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도 해왔던 것이다. 대한민국 또한 건국부터 반공을 내걸었고 한국전쟁이 아직 정전 상태로 냉전을 지속하고 있다. 민주화는 되었지만 분단체제의 만성적인 전쟁위기는 한국을 국가 목표의 최우선을 ‘안보’에 두는 안보국가로 만들었고, 국내의 정치·사회는 이런 전쟁정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해왔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국가보안법을 발동시키고 간첩으로 지목한 사람은 적대세력이 된다. 공포정치를 통해 일괄적으로 순종적이며 선거 외에는 일절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정화된 국민’으로 만들기 위한 국민 훈육을 지속했다. 전쟁정치에 복종하지 않는 국민은 빨갱이로 지목될 위험성이 있다. 여기에는 단순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농민들도 포함되어 이들의 요구나 집단적 행동 및 저항은 모두 ‘공안사건’으로 취급되었다.
경찰, 군대, 수사정보기관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시대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는 사법부, 검찰이 전면으로 등장하되 경찰과 수사정보기관이 여전히 핵심적 역할을 하는 지속적인 전쟁정치가 이어졌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시대 전반의 반공주의는 1945년 이후 동아시아 및 서유럽 반공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 이전의 연속성과 함께 비상 상태의 일상화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반공주의가 제도화된 법과 행정 집행, 정당의 분포와 성격 등으로 표현된 것과 사회·경제체제화된 것이 냉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벌어졌던 국가적 폭력이나 군부집권이 유사하게 나타난 것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 전쟁정치의 주역들 : 수사정보기관
경찰 사찰과 더불어 군과 민간의 수사정보기관은 법 위에 군림하며 은밀하게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이는 동독의 슈타지나 과거 소련의 KGB나 미국의 CIA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도·감청, 사건조작, 폭력 및 고문, 협박 등의 범죄조직같은 임무들의 그들의 활동이었고 이는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들은 언론 통제나 정치 및 선거나 재판에 개입하는데, 세금으로 운영되며 법을 준수한다지만 실제로 국정원이나 기무사 등의 예산과 활동이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공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적’은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나 안기부는 송씨 일가 간첩사건처럼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 인사에도 개입했다.
이러한 수사정보기관은 일제의 유산이고 식민지 전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조직이다. 독립운동가를 잡던 고등경찰과 헌병이 한국 경찰과 군 방첩대 및 중정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다. 일제 시기 첩보 기법, 고문 방법, 국민 기만술, 사건 조작 등은 그대로 이어져왔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수사정보기관들은 이후에도 정권과 결합하여 정권안보, 최고 권력자 보호의 첨병 역할을 한다. 권력자들 또한 권력 유지를 위해 수사정보기관을 이용하고 혹은 최고권력자의 자의나 변덕에 움직이는 범법기관이 되기도 한다. 국민에게 존재 자체로 공포감을 주고, 정치적 반대 의견의 개진을 어렵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기존의 권력을 안정화·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감시에 대한 공포는 자기 검열을 통해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하게 한다.
물론 국가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비밀활동의 필요성은 있지만, 지금까지 그러한 수사정보기관들이 안보와 방첩에 큰 공을 세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중정부장 이후락은 비밀 남북대화까지 했다. 이러한 중정의 활동은 결국 박정희 정권의 공고화를 위한 것이다.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를 5년 만에 부활시킨 이명박 정부에서, 2009년 8월 평택 시위 진압 과정 중 민간인 사찰이 진행되었다. 민주노동당 가입 여부 확인을 위해 노조 간부의 주민번호로 접속하여 당 홈페이지에서 당원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결국 2012년 18대 대선에서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 전쟁정치의 모순과 파괴적 결과
신체적·정신적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다. 억울한 처지에 놓인 나의 항변이나 주장이 전혀 전달되지 못하고 가족조차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태에서 저항이 불가능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될 때, 인간은 자아를 상실하고 자신의 인격성과 인간 존재 등 모든 것에 불신하게 된다. 이러한 국가폭력은 복종을 유도하기 위한 언어이며 앞서 말하듯 국민 훈육이라는 목표를 가진다. 안보와 효율의 논리는 전쟁정치를 지속시키고, 법의 지배나 정의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동아시아의 냉전과 남북 분단, 남북한의 만성적 군사 대결은 힘이 정의를 뭉갤 수 있는 근거와 명분을 제공했다.
박정희 또한 폭력이라는 도구를 통해 생산력을 증가시키고 모든 구성원을 목표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폭력은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일종의 언어가 되어 국가와 사회 전체 문화와 국민의 행동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러한 힘의 논리는 전쟁정치 사회에서 권력과 법 집행의 공정성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광주항쟁 책임자 처벌에 대한 처리와 부패 혐의로 구속 수감된 모든 정치인들 또한 공정성을 불신하고 힘을 믿기 때문에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례들이다.
전쟁정치에서 안보논리는 오로지 권력자의 사적 목적, 권력 유지의 허울이 되었고, 정권의 불안정과 공안기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작간첩사건이 대대적으로 발생했다. 진실의 대두로 안보논리의 정당성과 도덕적 기반이 무너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공동체의 적으로부터 자유와 권리가 일정하게 제한되고 통제될 수 있지만 그것은 약간의 희생을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할 수는 있어도 특정 권력이나 지도자를 위해 완전한 희생과 복종을 강요할 권리 따위는 없다. 오히려 국가에 의해 죽을 수 있다면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 나을 만큼 어떤 가치나 이상, 조직의 목적도 구성원 개개인의 생명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고, 국가 역시 개인의 생명 이상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 국가 존재의 전제는 구성원의 존엄과 행복의 보장이다. 최소한 생명권을 걸어야 할 극히 예외적 상황이라도 안보 부담이나 사망할 확률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공유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계급사회마냥 지배 세력들은 국민들에게 안보 부담을 떠안기는 것이 현실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또는 다수의 행복은 결국 폭력을 정당화하는 안보국가, 치안국가의 논리이다. 소수의 인간적 존엄성이 박탈당하는 것은 이미 파괴된 국가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식민지, 독재국가의 권력자들이 말하는 안보는 누구로부터 지켜야 할 안보이며, 누구의 안보인가? 결국 한국전쟁에서 이승만은 서울 방어를 외치며 국민들을 남게 했지만 본인은 가장 먼저 피신했다. 힘없는 사람은 국가의 교묘한 수사를 통한 애국심을 이유로 일방적 희생을 요구받고 목숨을 바치거나 국가에 충성하는 과정에서 치명적 피해를 입고, 힘있는 사람들은 모든 부담을 피해간다. 이러한 일방적 희생 혹은 자국민에게 총을 쏘는 국가는 존립할 정당성이 없다. 이에 반대되는 것이 전제 정권, 독재자들의 개인보다 국가우선논리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근대의 사회계약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득권이 다수인 것이다. 힘있는 사람만 면제되는 이러한 상황은 결국 도덕적 기초가 없는 국가를 만든다. 이 기득권들은 남 탓, 다른 나라 탓을 하면서 국가폭력을 저지르기 때문에 당당한 것이다.
사실 식민지 체제나 독재정권은 허구이며 종말이 쉽게 찾아오기도 한다. 국가폭력이 구성원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겉으로만 국가에 충성하는 척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구성원이 먼저 국가를 버린다. 혹은 이 세력들은 분노로 표출된다. 마치 군 의문사를 은폐하고 무조건적 복종, 사상통일, 반대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내세우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인간적 존엄성이 무너지면서 연대의 해체와 사회 파괴, 민주주의 불능 상태에 이어 국가붕괴를 낳게 되는 것이다.
 
5장 전쟁정치와 ‘법의 지배’의 실종
국가는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가해왔고 정당화해왔다. 법은 형식만 빌리고 실제로 ‘폭력적 법’의 성격을 띠었다. 이는 군주제나 식민지 체제에서 볼 수 있는 지배체제이다. 민주화 이전 한국은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중점으로 앞선 지배체제를 이어왔다. 이는 최소한의 절차까지 생략하고 포괄적이고 애매한 법조문으로 무차별적인 구속 및 기소, 폭력을 자행한 역사에서 볼 수 있다.
 
- 약자에게만 적용되는 법
대한민국은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이라 법에서 정했지만 현대자동차는 사법 처리나 판결 및 법 자체를 당당히 어겨왔다. 불법과 폭력을 엄격히 대처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시절, 고엽제전우회가 가스통과 라이터를 들고 나오는 등 극우 폭력집단들은 언론과 행정·사법계에서 묵인되어왔다. 결국 법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치의 대상은 언제나 시위대나 저항세력이었다. 도심 집회 전면 불허는 헌법에 명시된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발언이며 종북과 좌익은 실정법에 명시된 범법 집단이 아니다. ‘죄’가 법이 아닌 정권, 강자의 의지, 정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형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권력자들은 약자들을 향해 언제나 법과 질서를 자주 강조하고, 위법 시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대통령이나 검찰·경찰 총수가 권력층의 부패, 대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엄단’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권력자들 옹호집단은 처벌하는 시늉만 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집단의 범법은 온갖 법 조항을 걸고 가혹하게 처벌한다. 사법부가 정권을 의식하고 의중을 반영하려는 것들이 모두 정치검찰이자 정치재판인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검찰이 저지른 플리 바기닝 등의 행태들은 군사정권 시절의 관제 공산당 사건, 각종 간첩 조작과 유사한 행태들이다. 증언의 신빙성, 교차 증언, 정황 증거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특정 정치인을 범인으로 몰아가 욕을 보이는 것은 정치탄압의 전형이고 사실상 공권력의 범죄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87년까지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은 폭력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바람막이의 역할을 해왔고 약자의 저항을 옭아매기 위한 도구로 충실히 기능하였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21세기 들어서도 그런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 국가기관의 범법
법이 약자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말은 법의 집행이 힘의 논리에 좌우되고, 권력자·국가기관·대자본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의 위법보다 국가기관의 위법은 국가나 사회에 더 치명적이고 국가의 존립을 뒤흔든다.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고 국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국가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법이 힘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대표적으로 예전의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등 사실상 정부가 최대의 범법 집단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 국무위원, 말단 공무원까지 이명박 정부는 화려한 전적을 보여준다. 역대 대통령과 권력기관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수사정보기관들이 일상적인 범법을 벌여왔다. 특히 피의 사실을 공소 전에 검찰이 떠벌리면서 정치적 정적을 인민재판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까지 했다.
이러한 국가기관의 범법이 가능한 이유는 헌법 위에 국가보안법과 계엄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실질헌법이었고 계엄은 준전제군주 치하로 들어가는 명령이었다. 특히 국민보도연맹 학살같은 약식처형은 민간인을 재판 없이 살해하는 집단학살이기 때문에 반인도적 범죄이고, 국가의 조직적 국민 살해 행위다. 국가는 이 사실을 지금까지 은폐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 군사법원은 국가 범법의 대표적인 사례다. 법관의 자격이 없는 장교가 자의적으로 민간인을 재판해서 상고 절차를 밟을 기회도 주지 않고 사형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소송 기록과 더불어 재판장과 변호사도 없는 군사재판들이었다. 제주 4·3사건 또한 재판여부와 형량까지 모를 정도로 졸속적이고 재판의 이름만 빌린 사법 살인 혹은 사실상의 학살이었다.
이후 군사정권에서도 크고 작은 무수한 불법적 인권침해가 이어져 왔다. 이후 법적 근거도 없는 공안대책협의회같은 조직들은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하는 등 부도덕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협의회 의장은 대검찰청 공안부장이었고 민주화 이후 용산참사 등 이러한 검찰 주도의 국가권력 범법 양상이 보여지고 있다.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들이 마찬가지이다. 판사와 검사가 법을 지키지 않고,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권력집단의 의중에 따르고 있다. 실질적으로 법 뒤에 폭력을 감추고 있는 지배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오죽하면 법조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에 대한 조사의 결과가 공정성과 준법이었다. 양승태 법관을 비롯한 사법 적폐청산의 요구가 높아지는 지금, 한 번 더 다수의 국민들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 법위의 통치권
이승만은 스스로를 국왕처럼 생각하며 여순사건을 조작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학살하고 암살했다. 여순 직후 불순분자를 제거하겠다고 아동까지 조사하고 지목된 사람을 살해하는 등 전제군주와 같은 초헌법적 행위를 했다. 박정희 또한 진보세력을 탄압할 법을 만들어 소급하기도 하면서 보복성 처벌을 했다. 심지어 반정부 학생 시위대를 탄압하기 위해 반국가단체구성과 내란예비음모라는 엄청난 죄목으로 구속하기도 했다. 유신 이후에는 박정희는 사실상 국왕이었고 비상조치권으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권력자들은 스스로를 법을 초월하는 통치자로 생각하고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 유지를 위해 법을 집행한 것이다. 21세기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을 욕한 육군 대위를 ‘상관 모독죄’로 기소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저지른 수많은 범법행위를 하고도 이명박 대통령은 ‘법치’를 자주 언급하는 것과 다르게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에 대해서는 일정의 해명도 없었다.
지난 군사정권이 국가재건최고회의, 긴급조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 행정부로써 입법권을 행사했었지만 이는 헌법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사법권을 부정하고 권한을 침해하거나 혹은 행정부와 사법부가 한통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한 루소의 말에 따르면 초법적 존재의 통치는 국민들을 노예처럼 만들어 처벌의 두려움으로 침묵하게 하거나 질서가 유지되는 것처럼 만들 수는 있으나, 결국 법을 지켜도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신경쓰는 국민들을 만들어내면서 통치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이든 아니든, 통치자는 명령의 주체이고 책임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과 조선, 중국 인민 학살 및 강제동원을 지휘한 최고 책임자인 천황은 전범조차 되지 못했다. 오히려 ‘왕실모독죄’같은 형태로 전근대 왕조 시절 잔재가 남은 예를 태국에서 볼 수 있기도 하며, 한국 또한 현대판 불경죄로써 국가원수모독죄가 존재했었는데, 결국 국가 혹은 국왕을 초법적인 조재로 보는 것이다.
법이 통치자나 핵심 지배층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도구로 기능하고, 사람과 집단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법은 그 본질적 기능을 상실하고 사회의 기본 질서는 무너진다. 결국 인치가 통용되고 폭력세력이 통치를 위해 법을 급조하여 소급 적용하기까지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경우 법의 집행은 권력자의 사적 의지의 표현이자, 사법부는 권력자의 의지를 집행하는 도구가 된다. 지금 또한 국가기관의 명예가 걸린 사안일수록 대법원은 질질 끌다가 다른 이슈에 묻어 슬쩍 처리하고는 한다. 법원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권력자는 정적을 비상식적 죄목으로 무조건 잡아넣고 검찰과 사법기관은 정치·사회적 기준에 따라 유죄를 선고한다. 마치 탄핵심리 당시 국정원은 헌재를 사찰했고, 충분히 탄핵심리가 기각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기에, 박근혜 정권과 비선들의 국정농단에 대한 청산은 어려울 수 있었고 더 엄혹해 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헌재가 법의 기준이 아닌, 촛불혁명이라는 정세적 사회 기준에 따라 탄핵이 결정되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박근혜를 몰아냈다는 흥에 심취해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이후에 국가적 위기가 올 때 사법부는 오롯이 법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특히 삼성과 관련된 박근혜의 혐의는 전부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결국 한국의 사법부에 뿌리박힌 큰 문제를 뽑아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사법부가 구속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없는 법을 만들어내서 적법하다고 하는 등 표적 수사나 표적 처벌은 법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나라에서 나타난다. 처벌을 위해 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을 무리하게 갖다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발생하는 것이다. 우선 잡아넣으려는 목적을 앞세우고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을 나중에 찾아보는 검찰의 행태, 보복의 법, 탄압의 법 관행은 한국사회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더욱이 탈법을 하지 않고는 운영하기 어려운 한국 기업들이 정권에 잘못 보일 때 대대적인 세무조사나 감사를 받게 하는 것 또한 탄압의 수단이다. 이는 결국 선별 기소 혹은 정치적 기소, 표적 수사, 표적 감찰 등 정적 제거를 위한 과거의 법 집행이 현재까지 이어오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사면권도 통치권의 초법적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남용되었다. 특히 권력형 비리사범들을 사면하면서 법치 자체를 무시하는 조치를 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사면은 재벌 총수들이나 이건희 회장 단독 사면이기도 했다. 권력자들의 내 편 챙기기이자 스스로 범죄자임을 실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혹은 기득권의 위기를 사법부 스스로 마름이 되어 해결해 주기 위해 법전에 없는 법을 ‘관습’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결정으로 입법권을 제약하기도 했다.
 
- 사법부와 검찰은 피해자인가, 강자의 마름인가
사법부에서 가장 치욕적인 일은 조봉암 사형과 인혁당 재건위관련자 처형이라는 사법살인사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 사법부의 기본 성격은 식민지 시기 이래 중앙집권적 관료제 질서, 서열문화, 사법행정 감독 등을 특징으로 하는 관료 사법이라고 규정하고, 대법원장이라는 일극에 집중된 권한을 통해 전체 사법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며, 정치권력에는 순응적이나 사회에 대해서는 군림하는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법부는 정권에 굴복한 피해자라기보다는 굴복의 대가로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국가폭력을 정당화하여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군사정권 시절 검찰과 법원은 앞장서서 그러한 행동을 하였다. 법원은 검찰의 대리인이었고, 아예 검사 측에서 판결문을 써서 넘겨주기도 했다. 검찰의 고소장과 법원의 판결문이 오타마저 똑같은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또는 재판에서 검사는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을 증거로 채택하거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고백이 법원에서 기각되기도 했다. 사법부는 안기부나, 보안사, 경찰의 인권침해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법적으로 보증하는 법 기술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70·80년대의 간첩조작사건이나 공안사건에서는 사법부는 예외 없이 권력의 의중을 따랐다. 군사정권의 모든 범법과 범죄는 사법부의 협조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자신들의 행태가 사법부 독립이 보장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이나 노동 관련 사건 등 시국사건에서 영장 기각률이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한다. 결국 판사들의 가치관이나 사고가 보수화되어 멈췄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사회적 강자의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리는 행태는 그대로 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시키는 것에 ‘사법부의 독립’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사법살인 혹은 정치적 재판을 한 법관들은 아직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부 과거사 청산기구의 필요성이 거론된 것이다. 주로 국가보안법, 반공법 관련 사건들을 판결할 때 문제가 있었으나 자체 반성을 위한 기구없이 건별 판결을 통해 개별 판사의 사과로 대신했다. 결국 사법부의 판결은 아직 신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검찰은 민주화 이후에도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국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파렴치한 범죄자를 기소유예로 살려내고, 용산참사 수사 기록을 제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국가를 들먹이며 정당화한다. 현직 변호사 대다수가 말했듯, 여전히 검찰의 태도는 권위적이며 강압적이고 비인격적이라 수사 관행이 매우 부적절하다. 이는 결국 한국에서 정의의 원칙을 무너뜨린 주범이 검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법계의 부패, 범법은 박근혜 정권에서 정점을 찍었다.
 
- 전쟁정치 아래 ‘죄와 벌’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에서 법적으로 불법적인 것과 사회적으로 불법적인 것이 다르다. 즉 실정법상으로 불법인 것을 불법이 아닌 것으로 만들거나 실정법상으로는 합법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명분이나 꼬리표를 붙여서 사실상 불법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것이 실정법상의 죄와 실제로 처벌받는 것 사이의 괴리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재벌 총수가 어떤 실정법을 어겨도 풀려나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작전’에서 “이거 왜 이래, 나 경제사범이야”라는 대사처럼 경제사범은 죄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는 기호다. 재벌 총수의 사면 복권은 국가 경제에 기여한 바가 있다는 이유로 이루어진다. 오히려 부당 해고를 항의하는 사람은 공무집행 방해, 업무 방해 등의 죄목으로 감방에 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에서는 반공주의가 유죄라고 말할 수 있다. 좌익에 조금이라도 연루도면 빨갱이로 지목되어 죽을죄로 판단했고, 전시 상황이 아니더라도 민간인인 그들을 죽이는 불법이 저질러져 왔다. 재판 없는 학살이 불법임을 누구든 알고 있었지만 ‘빨갱이’를 고문하고, 고문 사실을 묵인하고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인식해 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 짓’과 가난은 죽을죄였다. 가난이 죄였던 사람들은 사회적 죄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죄가 없음에 당당했고 나가지 않는 것을 의심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순순히 경찰에 출두했다. 하지만 양심대로 행동한 사람들은 모두 벌을 받고 죽었다. 그러나 평소에 정부나 경찰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그들이 시키는 것과 반대로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지혜롭게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출두하지 않았고 순간을 모면하여 살아남았다.
이승만 이후 역대 대통령들과 그들의 지시와 묵인 아래 수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한 수사정보기관들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국가원로이자 국가유공자로 대접받고 있다. 결국 전쟁정치는 법과 도덕을 정지시킨 것이다.
 
6장 전쟁정치와 시민사회
베르너 마이호퍼는 국가가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면사회의 연대가 파괴된다고 말한다. 권력은 인간의 존엄이 침해당한 희생자를 저항할 수 없고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도록 유기하여 그의 연대성을 파괴하고, 오히려 인격성을 침해한 행위자들끼리 연대성을 강화할 수 있게 하면서 인간사회의 연대성을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락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국가폭력은 사람들 간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고 결국 사회를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폭력의 피해자들 간의 유대도 파괴된다. 고문을 한 주체는 국가권력이지만 고문 피해자가 동료의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책임의 주체는 국가임에도 이들은 서로를 원망하고 증오한다. 이것은 국가가 폭력을 통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대단히 비인도적인 행위다.
 
- 호소할 곳 없는 현실
국가폭력의 희생자와 유족들은 한국사회에서 권력이 쳐놓은 촘촘한 감시망과 더불어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국가의 끄나풀이 되어 고발자나 검사로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해 집단 또는 불량 학생 집단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현실을 말한다. 또한 폭력을 보고도 외면한 방관자들, 혹은 묵시적 동조자들의 행동도 그만큼 책임이 있다. 폭력이 만연하고 지속되는 데는 가해 동조자, 방관자의 역할이 크다. 이는 우리 사회 국가폭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이웃의 역할에도 빗댈 수 있다. 1차적 국가폭력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학교와 이웃 속에서 2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유없이 항변도 듣지 않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구조적·문화적 폭력이다. 자신 혹은 자신의 집단의 생각을 절대 확신하는 나머지 이견을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을 묵살하는 것도 폭력이다. 분쟁이 일어났을 때 정당하고 합리적인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편의 말만 들어주는 것, 동문서답, 응답해야 할 질문에 응답하지 않는 것도 소극적인 폭력이다. 국가폭력은 일회적이지만 2차 폭력, 즉 사회폭력은 지속적이고 매일 반복된다. 잔혹한 일을 당할 때 이웃의 무관심 혹은 권력에 복종하며 나를 따돌리는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이고 가장 불행한 상태에 있게 하는 것이다.
구성원에게 완전한 충성과 일사불란한 동의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해자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이견을 표시하기를 주저한다. 힘 있는 주류, 강자, 지배적 여론, 다수에 따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없는 개인이 처절하게 당하는 것을 못 본 체하는 것이다. ‘호소할 곳 없는 사회’는 가해자, 끄나풀, 밀고자, 따돌리는 자, 방관자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이웃이나 사회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나 폭력,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모른 체한다. 적극적인 가해 동조 행동부터, 폭력이 두려워 방관하는 행동, 무관심한 소극적 방관까지 여러 차원으로 나타난다. 강자의 불법 폭력에 굴종하는 방관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부드러운 전체주의 혹은 나이토 아사오가 말하는 ‘중간집단 전체주의 사회’는 국가 전체주의 대신 등장한 학교와 회사 내의 전체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유대인 대량학살에는 가해자 못지않게 그것을 알고 있었던 수많은 독일인의 침묵과 방관, 동료 유대인의 밀고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내일이면 자신이 가스실로 끌려갈지도 모르는 유럽 여러 나라의 유대인들이 동료 유대인을 밀고하거나,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도 침묵하거나,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최면을 걸거나 목격하고도 못 본 체해서 학살이 그렇게 확대되었는지도 모른다. 심각한 인권침해는 복종의 문화, 즉 적극적으로 나서서 밀고하거나 미행·감시하는 사람, 방관자,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폭력을 모른 체하거나 부인하는 언론, 힘있는 쪽에 무조건 순응하는 이웃과 시민사회가 있기 때문에 계속 지속되고 확산된다. 이는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인간관계를 찢어놓으며,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지옥같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 감시, 미행, 심판, 낙인찍기
역대 지방에는 지역 토호라고 하는 조선 시대나 유럽의 봉건 시대 영주처럼 지역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유력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지역 내 반정부세력을 감시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고, 지금은 주로 지역의 각종 사업에 개입하여 경제적 이권을 독점한다. 친일의 이력이 있는 이들은 이승만 정권과 한국전쟁 전후 군경을 도우면서 지역의 권력자로 부상하고 독재정권의 충실한 현지 대리자 역할을 했다. 토호의 전면 등장의 가장 큰 배경은 주민의 신망을 얻던 사회주의, 중도, 민족주의 계열을 전부 숙청한 한국전쟁 전후 학살사건이다. 이들은 민간 측 저항세력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권력의 감시조직이나 끄나풀이 되어 주민을 상호 감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한 분열로 권력은 효과적인 지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부역은 사회 분열의 산물이다.” 능력보다 대우를 덜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출세주의는 언제나 부역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제국주의나 군사정권은 언제나 이들 유력자나 숨은 부역자를 통해 주민을 통제하고 감시해왔다.
일제에 형성된 지역유지, 끄나풀을 통한 통제와 감시는 행정 책임자인 면장이나 구장, 면의 담당자들도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조선인이었다. 해방 직후 민초들은 일본인보다도 이러한 일제 끄나풀들에 대한 보복을 터뜨렸다. 정부 수립 직후엔 이승만이 조직한 민보단이 동네의 감시 책임을 맡고, 이후로도 애국반, 반상회, 유숙자 신고제, 국민반 등을 통해 국민과 정부 간의 소통을 명분으로 좌익이나 야당 지지자들을 색출하고 협박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특히 국민반 내 연대책임제는 단위별 인원 안에서 이적행위를 한 경우 가족과 일절 교제를 중지한다는 내용이다. 유대인 학살과 더불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도 이들 지역유지나 끄나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보도연맹원 소집·학살에서 자문 겸 생사여부를 고르는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났다. 부역자들은 자신이 밀고한 이웃이 사라지고 남은 재산을 약탈하는데 이를 정복자의 일원으로서 당연하게 여겼다.
군부정권에서는 재건국민운동이나 새마울운동 전개 과정에서 강화되었다. 지역유지나 끄나풀들은 각종 관변단체의 지역 지부, 시군 단위 라이온스 클럽이나 JC 등에서 활동하였다. 농촌의 수많은 단체는 행정기관의 직접 통제를 받고 단체의 장은 말단 행정기관의 끄나풀이었다. 갖가지 교육을 이유로 동원되고, 새마울 회관에서 반공 구령을 외치고 새마을 사업을 충실히 따르는 등 일제가 만든 주민 상호 감시, 밀고 격려, 주민 내부 통제 등 국민 감시체제가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다.
지역유지 외에도 약점이 있거나 과거 전력이 있는 사람, 공안사건으로 잡혀서 조사를 받은 사람이 끄나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요시찰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거나 심지어는 자녀가 다니는 직장까지 찾아와서 괴롭혔다. 경찰이 이웃에 간첩부인이라고 알려주어서 20년간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납북어부 간첩사건들도 대부분 동네 감시자들의 밀고로 시작되었다. 주민 일부를 포섭하여 끄나풀로 만든 다음 서로를 감시, 밀고, 통제하게 하는 사회에서는 기업 등 사조직도 국가가 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통제한다. 특히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포섭하여 고립시키거나 주변 사람들과 분리하는 공작을 한다. 민주화 이후 지금도 경찰, 국정원 등과 정보 연락체계를 유지하면서 노동운동가들은 사찰하고 이간질을 하고 있다.
특히 과거 지역 공동체나 이웃과의 끈이 약해지면서, 지역 사회에 깔린 각종 관변단체와 그들의 압력과 목소리에 의해 움직이는 지역의 자치단체와 의회 등이 국민의 세금을 주민 복지가 아닌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데 사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은 지역의 기업체 특히 건설회사 사장들이나 관변조직과 지자체 위원으로 참여해 정책 결정에 관여하며 직접 군수나 도의원에 진출하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 항상 문제가 되는 각종 예산 낭비. 불필요한 도로 건설 등이 모두 이들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지며,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제대로 복지가 미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단결하면 지역유지나 영향력 있는 인사, 관의 끄나풀이 권력을 남용하더라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웃의 고발과 폭력행사
오늘의 가해자가 내일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피해자가 될까봐 먼저 가해자가 되는 두려움의 문화는 폭력에 굴종하는 비겁함의 산물이지만, 국가가 ‘죄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실질적 가해로 표출된다. 이처럼 국가나 가해집단의 행동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두려움과 생존에서 기인하지만 결국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의 행동을 도덕적으로도 정당화하게 된다. 폭력과 비인간화 작업은 권력이 먼저 시작했지만 온 사회가 그것을 따라 하는 상황이 된다.
권력은 저항세력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버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웃의 관심과 동정을 명령을 통해 차단하려 하였다. 결국 외면하고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중죄인으로 지목된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동정심을 갖는 것도 유죄다. 현대 한국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국가보안법 제10조 불고지죄인 것이다.
만약 지배자들이 생각하는 ‘중요 범죄’가 벌어지는데도 국민이 신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법이 국민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증거이거나, 그것을 범죄로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범죄 신고 여부는 개인의 자율적 판단 문제이며, 형사처벌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양심의 자유 침해다.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과 내란에 대해서도 신고 의무를 규정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신고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반인륜적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 적응해서인지 한국인들은 정말 신고 정신이 투철하다. 모든 사람이 적과 나로 구분되는 전쟁 상황에서 상호 고발과 감시는 가장 노골적이고도 적나라하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색출 때도 동정은 같은 부류로 분류·감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들과 변호사, 그들 편에서있는 사람들까지도 고발했다. 이러한 밀고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경찰이나 검사의 입장에 서게 하는 일이다. 파시즘, 군부독재는 그런 체제였고 그것은 공동체의 파괴다. 한국전쟁 후에도 피난한 사람이 피난 가지 못한 사람을 심사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적’을 고발하고, 직접 죽이기도 하듯, 권력의 공포는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파괴한다. 그들 대부분은 학살사건 당시 잘못이 없는 이웃이 끌려가도 따지지 않고, 저항과 고함 소리에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이 한통속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행동을 단속하고 집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 후에 집밖을 나가더라도 누구와 친하고 잘 아는지 절대 말하지 않고 그저 모른다고만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국 신뢰의 완전한 붕괴이며, 무책임성의 만연이고 도덕의 파탄이었다. 이웃의 억울한 죽음을 모른 체하거나, 거짓 증언을 하거나,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가족을 따돌리는 이웃과 사회는 이중 삼중으로 정신적 불구 혹은 정신 파탄 상태에 빠지게 된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부인하면서도 부정의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을 수 있더라도 결국에는 침묵과 방관, 무책임성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과 파시즘, 군사독재의 여파는 단순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과 지역사회를 넘어 사회 자체를 파괴한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국가나 조직을 배신하는 자로 지목되어 처벌을 당하고 주변은 자신의 밥줄 때문에 가만히 있는다. 언론은 그들을 “침묵하는 다수”라 부르기도 한다.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세상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굴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력감의 노예가 된다.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연변의 작가 김학철은 “편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라. 인간답게 살려면 그에 도전하라”고 말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
 
- 집단 따돌림, 기피
연평도에 거주하다가 납북어부가 되어 간첩으로 몰려 실형을 살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가 1997년 사망한 김 씨의 가족은 정부의 보상을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주변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김 씨의 이종사촌 동생 방 모씨는 “형을 간첩으로 몰아세운 사람들에게 거짓이라도 좋으니 사과 한번 받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정부의 잘못이나 과잉 진압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피해를 입은 사람을 오히려 질책하거나 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웃의 행동은 이제까지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보여주던 모습이었다. 대세를 다라야 하는 부드러운 전체주의 사회의 풍경이다.
기피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은 따돌림이다. 전통사회에서 주로 반역죄, 모반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그 대상이었다면 근현대에 오서는 간첩이나 정치범이 주로 그 대상이었다가 지금은 학교나 회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 간첩 혹은 좌익으로 지목된 사람들, 학생운동 혹은 노조 활동으로 투옥되거나 사찰받은 사람들이 주로 이 범주에 포함되었다. 분단과 한국 전쟁, 그 후 반세기의 전쟁정치를 겪은 한국의 이웃들은 이들을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가혹하게 따돌리고 괴롭혔다. 제주4·3사건으로 고아가 된 사람들은 육지로 나와 ‘폭도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갔고,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점령기의 부역자들도 이렇게 취급당했다. 이웃들은 권력이 지목한 위험인물, 좌익으로 몰린 사람과 가족이 동네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기피하거나 따돌린다. 군부정권 시절에는 데모하는 학생이나 지식인은 물론, 인권 변론을 하는 사람까지도 친구들에게는 기피대상이었다. 좌익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기피는 더욱 심했다.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 조의금 지급을 거절하기도 했다. 유족 역시 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연락을 삼가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같이 핍박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간첩사건 관련 가족은 따돌림을 당했다. 심지어 교단 차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자, 좌익 편에 선다는공격을 받을까 봐 두려워 종교단체나 인권단체로부터도 외면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제3자들의 무관심 혹은 방관은 “적극적 수동성”의 결과라고 조프스키는 말했다. 당국이 적으로 지목하는 이웃의 고통에 동참했다가 크게 피해를 본 경험이 축적되어 그러한 태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진짜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안다고 말 할 수 없었다는 태도이다. 심지어 자신의 내면까지도 감시의 대상으로 삼은 이러한 자기 통제는 금기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나타난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당하거나 투옥된 이들의 가족들이 한 고백은 충격적이다.하재완의 막내아들은 네 살 때 동네 아이들이 나무에 묶어놓고 간첩새끼라고 하면서 총살하는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과 그의 가족들, 조봉암의 딸까지도 따돌림을 겪었다. 용산참사의 피해자인 철거민들과 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가진 국가 혹은 정치가와 언론이 그렇게 벌레처럼 규정했기 때문에 전경들과 용역회사, 이웃과 사회까지 거리낌 없이 이들에게 발길질을 할 수 있던 것이다.
 
- 가족파괴
가족과 인척의 좌익 경력, 월북, 피학살, 좌익 활동 혐의로 불이익을 받아온 가족들은 서로를 원망하고,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거나 학대하는 등 괴롭히다가 결국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혹은 생존과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독재체제에 순응하다 보면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하고 평소 갈등이 있는 이웃 간에 정치적 사건이 겹치면 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국가는 국민을 복종시키고 권력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을 모두 서로 간에 고발자, 무서운 적, 차가운 감시자로 만드는 최고의 지휘자다. 국가보안법 제10조 불고지죄 조항은 결국 개인에게 죄를 묻지 않고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끼리 서로 고발하게 함으로써 연대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수사기관에 가족을 신고하든 안하든 결국 불고지죄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국가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가정파괴범이었다. 실제로 가족 중 한 사람이 간첩으로 지목되면 가족 전체가 파괴된다. 아버지가 간첩이 되고, 처가는 이혼을 시키고, 자식은 간첩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거나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납북어부 서창덕이나 수지김의 사례를 볼 때, 결국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 가족으로 지목되면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이렇게 혹독하고 처절하게 당한다. 국가는 수지김을 죽였지만, 그런 국가가 만든 사회, 특히 가족은 그녀의 혈육을 죽이고 학대하고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1970~80년대 노동운동, 학생운동에 관련되어 구속되어 간첩으로 몰리는 이들도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
수사 당국은 피의자를 잡지 못하면 가족과 친족을 괴롭히기 때문에 사건 처리 과정에서 관계기관에 협조한 친척과 원수가 되거나 척을 지는 경우가 많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보더라도 국가와 가족윤리는 양립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륜을 파괴하고서 유지되는 국가나 사회는 없다.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 조항과 가족이라도 간첩은 신고해야한다고 압박하는 사회에서 국가는 신뢰받을 수 없다. 국가폭력, 학살, 전쟁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당사자이지만 사회와 국민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는 피해자의 증상을 보인다.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처럼 자기감을 상실하여 폭력에 둔감해지며,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상실한 모래알 같은 개인들만이 서로 아무런 신뢰감 없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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